2015년 4월 29일 수요일

그리움이란 것은

 * 그리움이란 것은 * / 안재동 



나는 간이역에 대해 특별한 정감을 갖고 있다. 간이역의 이미지 속에는 이별 혹은 만남, 애틋함, 그리움, 기쁨, 슬픔, 낭만 등 우리네 인생사 대부분이 용해되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완행열차로 여행하다 간이역에 닿을 때마다 역사 내부 혹은 주위 어느 곳에선가 그런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거란 느낌이 들고 때론 동화처럼 들려온다. 『완장을 찬 역무원이 씩씩하게 깃발을 올리자/ 질긴 슬픔 몇 덩이가 꾸물거리며 출발한다/ 제천으로 가는 슬픔/ 원주기독병원으로 가는 슬픔/ 예미 함백 석항으로 이사가는 슬픔/ 영월 청령포로 흘러가는 슬픔/ 서울 공장으로 굴러가는 슬픔/ 슬픔은 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박세현 '별어곡' 중에서)』라는 시도 있지 않은가. 

간이역의 정취는 구수하다. 역사와 철로, 기차는 물론 간이역을 이용하는 승객들까지도 구수한 정취에 함께 어우러져 보인다. 도시의 큰 역에서는 시끄러움과 아우성, 살벌함, 메마른 감성들 외에는 별달리 느껴지는 것이 없지만 간이역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소박함, 순수함, 나눔 같은 느낌이 군데군데 배어 있다. 간이역에는 오래 전에 지나간 일들 혹은 다른 어떤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도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든다.
간이역들은 이름도 하나 같이 아름답다. 간현역, 강촌역, 국수역, 능내역, 망상역, 무릉역, 별어곡역, 사능역, 삼례역, 소요산역, 압록역, 정동진역, 추풍령역, 춘양역... 간이역은 산과 들, 강, 마을, 때론 비나 안개 등과도 잘 조화되어 늘 서정적 풍경을 자아낸다. 간이역사 주위의 나무나 풀, 꽃들까지도 색다른 정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제 그런 간이역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추세다. 비행기, 새마을호, 버스, 승용차 등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른 편하고 빠른 수송 매체들의 급증과 도로의 확장과 개선 등으로 간이역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소득의 증가와 함께 시골 가구들도 자가용이나 여타 차량을 많이 확보해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완행열차의 일상적 승객 수는 점점 줄어든다. 간이역에 정차하는 완행열차의 운행 회수도 축소되어 가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역무원 한 명 없는 간이역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문제일 뿐 언젠가는 간이역들 대부분이 없어지게 될 거란 생각이 들면서 가슴에 안타까움만 가득 찰 뿐이다. 

나는 집이 서울에 있고 직장은 수원에 있으니 날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왕복한다. 그 과정에서 갈 때와 올 때 버스와 지하철을 각각 두 번씩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렇게 서울에서 수원에 있는 직장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편도로 대략 2시간이니 왕복 4시간을 날마다 길바닥에 버리고 다니는 셈이다.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면 시간이 좀 단축되겠지만 연료비와 고속도로 통행료가 만만치 않다. 또 통행료가 아까워 일반도로로 다니자면 신호등을 한정 없이 받아야 하니 이동시간이 지연된다. 자가용 출퇴근은 피곤과 졸음도 문제다. 그래서 나는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대중교통으로 서울에서 수원까지 출퇴근을 하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이 수원역이다. 

나는 20여 년 전(1983년 봄) 수원 인근 부대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대학 졸업 후 병력특례를 받을 수 있는 직장과 입대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때 맞춰 시행되던 육군사관후보생선발 공개경쟁시험에 지원 합격하여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 소정의 훈련과정을 마치고 육군소위로 임관했는데 첫 발령지가 그 곳이었다. 중위계급으로 제대할 때까지 3년간 다른 지역으로 전보된 일이 없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실감난다. 제대할 당시 다시 수원 땅으로 와서 생활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는데 또 수원과 연이 닿았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도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고도 하지만 근무지를 수원으로 옮긴 지도 벌써 삼 년이나 되었다. 수원은 내겐 정말 특별한 곳인 셈이다. 

제대한 지 17년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수원역에 다시 도착했을 때는 오래 전 군대생활 당시의 추억들이 머리로 가슴으로 쏴아 하고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수원역 전철역사 개찰구 쪽 벽에는 큰 거울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바로 오래 전의 거울 바로 그것인 것 같았다. 그대로 붙어 있었다. 군대시절 당시에 수원역사를 통과할 때마다 그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고치곤 하던 일이 생각났다. 역사 건물 내부도 별 달라진 것이 없어 감회가 무척 깊었다. 오래 전 그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함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수원역 주위의 대부분 건물과 지형들조차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었으니 반가움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수원역을 출퇴근 때마다 일상적으로 지나다녔는데 그런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내가 수원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여가 지날 즈음 기존의 수원역사는 허물어지고 말았다. 초대형 민자역사 건물의 완공 때문이었다. 예전 역사건물이 없어지고 난 뒤부터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원에서의 옛 추억들이 빛을 바래 가는 것 같다. 예전의 수원역사를 지날 때마다 습관처럼 떠오르던 추억들이 망망대해에 침몰하는 타이타닉호 선체의 경우처럼 서서히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예전의 수원역사에 대해 많은 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예전의 수원역사는 나의 추억이 될만한 오래 전 일들을 거의 대부분 생생하게 되새기게 해주는 매개체나 마찬가지였다.

새 역사가 준공된 뒤부터는 수원역 주변의 환경도 덩달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민자역사는 초대형 백화점과 복합영화관, 고급음식점, 기타 쇼핑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이젠 수원시도 상주 인구가 100만이 넘으니 수원역 매표구가 날마다 장사진이고 승객들로 수원역 일대가 늘 북적댄다.
장맛 보다 뚝배기 맛이라고 했던가. 새 역사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모습이 어쩐지 밝아 보이고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역사 내부엔 이 것 저 것 볼거리가 많고 각종 쇼핑도 가능하니 예전의 경우처럼 타야할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대합실에서만 지루하게 있지 않아도 되니 그렇기도 할 것 같다.

아무튼 가끔은 예전 역사와 함께 옛 추억도 좀 떠올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때 마다 육중한 새 역사의 모습이 심술궂게 중첩되어 버리는 바람에 실감이 잘 안 난다. 뭐든 안보면 잊어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생활방식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은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 변하거나 사라진다. 헌책방, 재래시장, 쌀가게, 솜틀집, 옹기, 호롱불, 간이역, 협궤열차(내가 근무한 부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 종점이었고 인천과 수원간 노선이란 뜻인 수인선이라 불렸다) 같은 것 외에도 참으로 많은 것들이 우리 주위에서 이미 없어졌거나 사라져 가는 상황이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은 정도의 차이일 뿐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떨치지 않으려 함은 집착일까 미련일까 아니면 현실도피일까? 한편으론 옛 것을 그리워함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일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이라고 볼 수 있지 아닐까?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 같은 일들이 결코 그리움이 될 수는 없듯이.

"사람은 기억을 더듬으며 그리움을 먹고사는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잘 나가던' 시절 또는 '좋았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만족을 느끼거나 힘을 재충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지 않으면 안 될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추억이 생생하게 보존된다면 지난 일들이 그만큼 좋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며, 추억을 오래 간직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은 지난날의 삶이 그만큼 충실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