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오늘날은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대중적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금의 텔레비전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과는 달리 현대 비평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텔레비전은 정보나 오락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시청자가 여가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순기능 못지 않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역기능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스 프로그램이 그 역기능의 한 예가 아닐까 한다. 성범죄나 살인사건 보도 혹은 마약 관련 보도는 어떨까? 가령 마약 환자들이 많다는 뉴스가 나오면 평소 마약에 대해 잘 모르던 시청자도 스스로 마약에 접근해 보고 싶어할 수도 있다. 마음이 외롭거나 괴로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도피심리와 함께 군중심리까지 작용할 수도 있다. 보고 나면 어쩐지 기분이 우울해지는 내용의 각종 사건 기사들이 방송뉴스를 통해 날마다 반복된다면 시청자에게 해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보도에 있어 흔히 '국민의 알 권리'라는 말로 어떤 것이든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국가와 국민간에 각종 정보의 공개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할 때 쓰이는 말 아니겠는가.
우리는 때론 아주 중요한 일인 데도 그저 오랜 관습이나 제도적 속성을 가진 사항이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지 않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서 기분이 좀 떨떠름한 경우가 있더라도 혼자 이의를 제기하기가 좀 귀찮고 부담스러워서 혹은 용기가 없어서 그냥 참고 지내는 일도 허다하다. 만일 국민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결국 정치든 사회든 방송이든 중우(衆愚)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외 정세나 경제침체 등 요즘은 이런 저런 일들로 사회가 좀 불안정한 편이다. 이럴 땐 국민들의 마음도 불안하기 마련이다. 방송뉴스는 우울하거나 혐오스런 내용의 사건 보도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떤 이들은 뉴스시간만 되면 다른 쪽으로 채널을 재빨리 돌려버린다. 왜냐하면 혐오성 내용의 기사를 통해 기분을 망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대적 문화현상을 볼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중매체, 그 중에서도 영상매체의 광범위한 영향력이라고 한다. 영상매체 중에서도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으뜸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중적 전파력과 함께 강한 전달력, 현장감, 동시성의 특성으로 인해 시청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더불어 자라는 것은 오늘날의 새로운 인간적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방송은 공공재라고 한다. 방송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가치논리보다도 사회책임론이 강조되는 말일 것이다. 대개 저녁 여덟 시 또는 아홉 시에 방송되는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는 통상 하루 중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을 선별 및 집약해서 방송하고 아주 중요한 아이템들만을 내보내면서도 각종 혐오성 사건 소식들이 언제나 끼어 있는 것 같다. 통상 메인 뉴스 시간에는 전 가족이 함께 모여 방송을 시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분 좋고 희망적인 소식들이 많이 전해졌으면 한다.
존속살인이나 패륜행위 등도 그렇고 혐오성 사건들이 뉴스에 자주 등장할수록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사회가 정말 썩어가고 있구나", "말세로구나"라는 등 세상을 탄식케 하고, 불쾌감과 함께 우울증 등을 유발시킬 수도 있고 사회병리 심리를 확산시킬 수도 있다. 가령, 목사나 신부, 승려 등이 강간 또는 성추행으로 큰 물의를 빚은 보도를 자주 보는 이는 "정말 이 세상의 종교도 성직자도 모두 썩었구나"하고 생각하기 쉽다. 또 어떤 이는 "성직자들도 저렇게 형편없는 짓들을 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착하게 살아야해?" 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죄의식은커녕 미안함마저도 못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서적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의 아이디얼 타입(Ideal Type)이 부족한 것이라고 한다. 교과서는 바른 길을 제시하지만 사회의 현실을 가늠하는 방송뉴스를 통해 나쁜 일들이 너무 많이 보여지는 것은 아닌지 또 그 저변에 방송의 선정주의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볼 일이다.
서당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되새겨 보자. 좋은 소리도 열 번 들으면 싫어진다는 말도 있는데, 아무리 도덕적으로 잘 무장되고 비판능력이 탁월한 시청자라도 비슷한 사건을 자꾸 보게 되면 짜증이 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학습효과가 발생하여 잠재적 행동유발요인으로 남게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지는 상세한 사건전개 과정을 통해 금새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범죄에 적용하는 사례들이 실제로 왕왕 있지 않은가. 공격성이 생활의 요소라고도 하는데 어린이는 가르쳐주지 않는 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잘 모른다. 대부분의 행동은 모방이나 관찰을 통해 습득되기 마련이다. 현 시대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일찌감치 범죄를 학습하며 자신의 잠재행동화 하지나 않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본다.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경제가 불안정할수록 자살과 강·절도, 폭력 등 각종 범죄 발생빈도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범죄 보도가 많으면 시청자에게 경각심을 주기보다는 대중적 심리에 의해 죄의식을 약하게 할 수 있다. 범죄자 개인이 느끼기에는 자기 혼자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가 죄를 짓는 것으로, 즉 보편적인 사회 행동으로 인식하여, 윤리의식이 소멸될 수 있다. 또 폭력장면 등 일상화된 혐오성 뉴스는 결국 시청자에게 가치판단 능력 둔화와 정의감 상실 현상을 낳게 할 수 있다.
뉴스가치는 뉴스가 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젠 방송뉴스에서 반사회적이거나 혐오성 내용의 기사보다는 미담이나 선행 위주의 보도를 많이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